中의 '조건부 한반도 통일론'
최유식 베이징특파원 [특파원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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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 2012.05.20 23:01
지난 연초에 베이징에서 열린 한반도 문제 토론회에서 북핵문제를 둘러싸고 중국 학자들 사이에 한바탕 논쟁이 벌어졌다. '허튼소리'라는 말이 오갈 정도로 격렬한 분위기였다고 한 참석자는 전했다.
논란의 중심에 선 것은 원로 한반도 전문가인 장롄구이(張璉��) 중앙당교 교수였다. 그는 "북핵은 실질적 위협이 아니라 협상용 카드" "북핵은 본질적으로 미북 간 문제로 계속 끌고 가는 것이 낫다"는 중국 내 주류 학자들의 시각을 정면으로 비판하면서 북핵문제에 대한 원칙적 대응을 주장했다. 장 교수는 "북핵은 북한의 주장처럼 미국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생존전략 차원에서 개발됐다. 북한은 결코 스스로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김일성이 1953년 한 회의에서 "우리도 원자탄을 보유해야 한다"고 말했다는 중국군 원로의 증언도 공개했다. 그는 북핵의 가장 큰 피해자가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 될 것으로 봤다. 북한이 보유 핵무기를 바탕으로 '벼랑 끝'을 향해 달려가면 답답한 것은 멀리 떨어진 미국이 아니라 바로 이웃한 중국이라는 것이다. 또 이에 자극받아 한국과 일본이 핵개발에 나서면 중국의 안보 상황이 더 악화될 것도 우려했다.
한반도 문제에 대해 이처럼 달라진 시각을 가진 중국 학자들은 의외로 많다. 진창이(金强一) 연변대 교수는 최근 논문에서 '북한 급변사태 같은 위험이 사라지고 중국 동북지역의 발전이 촉진될 수 있다는 점에서 한반도 통일은 이상적인 상황'이라고 썼다. 북한을 미·중 세력 간 완충지대로 삼는 것이 중국에 유리하다는 전통적 관점을 뒤집은 것이다. 중국 고위층의 브레인으로 잘 알려진 추수룽(楚樹龍) 칭화대 교수나 주펑(朱鋒) 베이징대 교수도 비슷한 입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런 시각은 아직 중국 내 주류가 되지는 못하고 있다. 군부를 중심으로 '북한의 지정학적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생각이 굳건하다. 한 중국 학자는 "중국 고위층은 2004~ 2005년에도 대대적인 한반도 정책 전환을 모색했지만 결국 원점으로 돌아가고 말았다"고 말했다.
중국이 북한문제로 골치를 앓으면서도 좀처럼 방향 전환을 못하는 데는 통일 이후 한반도의 전략적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가 작용하고 있다.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중립을 취할 수 있겠느냐는 의심이다. 베트남 통일 이후 남중국해 분쟁이 일어난 것처럼 통일한국과 중국 간에 간도(間島) 영유권 갈등이 격화될 것으로 보는 이들도 적잖다. 이런 이유로 최근 중국에서는 '조건부 한반도 통일론'이 제기되고 있다. 저장(浙江)성의 한 학자는 지난달 싱가포르 연합조보 기고문에서 "한국 주도로 통일하면서 '아시아의 독일'이 탄생하는 것이 최선"이라면서 "한국이 (중국과) 정치적으로 타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에 얼마나 무게가 실려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북한의 3차 핵실험을 앞두고 중국의 실망과 위기감이 매우 크다는 점이다. 우리의 미래 생존전략과 관련되는 이런 문제는 정치적 이유로 미룰 일이 아니다. 지금이라도 중국과 더 적극적인 대화와 모색이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