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착시’ 걷어낸 한중대화 필요하다
2020-03-23 12:24:57 내일신문 게재, 이창열 AP글로벌컨설팅 중국센터장 중국사회과학원 경제학 박사
코로나19로 인한 중국인 입국제한 논란이 한중갈등의 소재가 되어 안타까웠다. 방역물품
지원의 온정도 냉골 기운이 여전한 양국관계 탓에 금세 식어버렸다. 사드갈등으로 생채기가
난 한중관계가 좀처럼 아물지 못한 탓이 크다. 우리의 관계개선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치경제적
위상이 부쩍 커진 중국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대중 저자세 논란까지 일었던 양국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대화상대인 중국의 속성을 고려한 한중대화가 절실하다.
중국은 공산당 일당이 주도하는 ‘사회주의 국가’이자, 인구는 우리의 28배 국민총생산은 8배인
‘대국’이다. 우리와 비슷한 서방국가 대하듯 합리성과 등가성, 그리고 진정성만으로 중국과
대화하면 속내를 제대로 읽지 못한 ‘착시현상’에 빠지기 쉽다.
중국은 공산당이 장기집권하는 사회주의 체제이기에 선거로 정권이 교체되는 서방국가를 상대로
‘낙숫물이 댓돌을 뚫는’(滴水穿石) 긴 호흡의 대화전략을 구사한다. 우리가 안보정책이나 대북정책
을 정권 차원의 목표로 접근하는 조급함을 보이면 중국은 자연스럽게 대화의 우위를 점한다.
지속가능한 장기전략에 바탕한 대화가 되어야 중국도 신중하게 반응한다.
사회주의 국가는 정치적 목적을 우선하고 경제는 수단화하는 경향이 강하다. 중국이 관광객 방한
제한, 한류 진출 제한 등을 내렸던 ‘사드 한한령’이 대표적인 예다. 경제가 한중대화의 볼모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맑은 날에도 비오는 날을 대비하는’(居安思危) 전략이 필요하다. 미국과
중국에 과도하게 치우치지 않으려는 신남방정책과 신북방정책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중, 서방 상대로 긴 호흡의 대화전략 구사
중국은 선전선동조직을 통한 여론관리가 용이해 서방국가와 대화에 유리하다. 과도한 사드보복을
자제하자는 중국내 목소리는 여론화되지 못한 반면, 사드 배치 당시 중국의 태도를 문제삼는 한국내
비판여론은 강해 대화에 어려움을 겪었다. 중요 현안은에 대해서는 우리 내부의 다양한 의견을 사전
에 수렴하는 노력과 함께 명분을 실리보다 중시하는 사회주의 국가의 특성을 고려한 대화가 필요하다.
중국은 5000년 역사 속에 동아시아 문명권을 선도한 정치대국이다. 1949년 신중국 수립 이후 현대국가
체제를 갖추면서 주변국과의 평화공존 호혜협력을 강조해왔고, 시진핑 주석은 주변국과 ‘친하게 지내
고 성실하게 대하며 혜택을 나누고 포용하는’(親誠惠容) 정책을 표방했다.
그러나 진시황 이후의 중국 특색 중화주의는 엄존하며 ‘조공질서에 바탕한 중앙과 주변 관계’에
여전히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2017년 미중정상회담에서 시 주석은 ‘(과거) 한국은 중국의 일부
였다”고 한 적이 있다. 우리가 당당하게 임하지 않으면 중국은 쉽게 과거의 습관으로 돌아가기
쉽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중국은 막강한 시장의 힘을 적극 활용하는 나라다. 2000년 마늘파동, 2005년 김치파동, 2016년 사드
사태에서 이미 확인한 바다. 2019년 우리의 대중수출은 전체 수출의 25.1%로 미국과 일본을 합친
18.8%보다 많다. 중국 경제성장률 1% 저하는 우리 성장률을 0.5% 낮춘다고 한다. 이런 경제대국과
‘대결’이라는 파국의 길을 택하기는 쉽지 않다. 한반도의 전략적 위치를 활용해 국토확장의 실리를
취한 고려 서희 장군의 ‘지혜’를 되살려야 한다. 무엇보다 반도체처럼 우리만의 강점을 키우는
‘절치부심’이 있어야 응당한 대접을 받는다.
양보할 수 없는 핵심이익엔 결기 보여야
한중대화에서 중국이 거론하는 ‘핵심이익’을 우리도 분명히 해야 한다. 물러설 수 없는 ‘핵심이
익’인 안보 북핵 통일문제 등은 쉽게 타협하지 말고 고통이 있더라도 지켜내는 ‘결기’가 필요하다.
사드갈등을 봉합하기 위해 사드 추가배치, 미사일 방어체제(MD) 구축, 한미일 군사동맹을 하지 않겠다
고 한 ‘3불합의’의 경우 중국의 선의를 믿고 쉽게 양보한 것 같은 아쉬움이 남는다.
코로나19 대처를 계기로 한중정상간 따뜻한 대화가 오가고 시진핑 주석의 올해 방한과 관련한 논의도
이어지고 있다. 한중관계의 해빙을 위한 양국 대화 속에서 ‘사회주의 대국’과의 대화에서 생기는
‘착시현상’이 걷어지기를 기대해본다.
